★Princess Diary★

내 삶의 작은 등대, 동해에서

아리온~✞ 2005. 11. 9. 04:01

 

 

 

 

 

 

동해바다엘 가자.

꿈에 젖은 포구. 어둠에서 건져낸 푸른 동해로.

내 청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바다.

 

바다는 언제부터인가 미친 그리움이 되었다.

내 울혈의 삶이 좁은 그릇 안에서 흔들리고 출렁거려 깊어 진 멀미.

마침내 살을 찢어 콸콸콸 솟아나는 핏줄기처럼 시원스런 꿈의 누수.

동해. 거기로 가자. 거기로 가자.

버릴 것들 모두 버리고 헐벗은 넋으로 동해로 가자.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바다. 안개의 바다.

무명의 푸른 눈. 소금 묻은 바람이 코끝으로 아려오는.

여긴 언제나 임종같은 따뜻한 절망이 있다.

황량한 공동묘지 같은, 외롭고 은은한 노래가 있다.

꿈과 꿈들의 칸칸을 이어 달려 온 여기는,

빛이 들기 전의 가장 어두운 땅끝이 있다.

 

동해엘 가자.

등짐처럼 무거운 뉘우침을 지고,

눈물샘 주위로 말라가는 솔잎처럼 붙은 속눈썹을 씀벅거리며,

아...문득 울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통곡하여 고백할 무엇을 생각했다.

살아 온 일이란, 살아 갈 일이란, 얼마나 뿌리깊은 자기에의 경멸이었던가.

따뜻하게 맞쥔 손 하나 없이,

자기 왕국 깊숙히 어느 누구 하나 데려오지 못한,

쓸쓸한 인생.

그저 함께 쓸쓸할 수 밖에 없는 침묵의 동행들과 가끔

때묻은 소줏잔을 기울이며 애달파 했던.

돌아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기억의 아물거리는 수평선.

 

동해바다엘 가자.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잊어야할 사람들을 지고 가는 길이었다.

버려야할 희망들을 지고 가는 길이었다.

희디흰 파도의 물굽이가 나를 데려갈까.

내 넋이 운명처럼 매달리던 애착과 집착을 끊어,

저 아득한 심연 속으로 데려가 줄까.

애욕도 물욕도 사라진 빈 마음 한덩이,

빈 가죽부대에 무뚝뚝하게 담아준 뒤 나를 등 떠밀까.

 

동해로 가자.

동해바다가 아름다운 건, 빛이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내가 머리에 이고 살아 온 그 때묻은 햇빛이 아니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순결의 첫 빛,

오로지 나를 향해 가장 먼저 달려 온 빛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빛들을 가슴 속에 담아 넣어 나 또한 하나의 별 빛이 되고 싶음이다.

단 하루 내 넋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던 삶들,

이 날 만이라도 내 바다를 내가 가지리라 생각하면서.

두 팔을 벌려 바다와 껴안는 시간,

문득 동행도 나도 잊었다.

 

내 사랑의 가장 따뜻한 언저리.

거기 출렁이는 동해바다로 간다.

 

 

 

※ 써치라이트 불 빛이 없는 빨간 불 빛 하나 깜박거리는 작은 등대 속초에서...유나